존 번연의 생애와 신학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는 셰익스피어와 존 번연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음을 선정적으로 만들고 절망을 숭고하게 만들며 성을 낭만으로 만들고 감상적인 것과 무운시의 기계적 가락으로 공허한 것을 감추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진정한 영웅적인 자질들인 믿음, 소망, 용기, 확신 등과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점에서나 또한 무운시의 표현력 면에서 번연이야말로 훨씬 뛰어난 작가이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번연이 셰익스피어보다 뛰어난 작가라는 뜻인 것 같지요? 영국의 역사학자 매콜리는 좀더 쉽게 말합니다.
“17세기 후반의 잉글랜드에는 많은 명석한 인물들이 있었지만, 당대인의 상상력은 단 두 가지 지성에 의해 사로잡혀 있었다. 그 지성 가운데 하나는 <실락원>에 의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천로역정>에 의한 것이었다.”
뛰어난 문인으로 후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는 번연이지만, 사실 그는 목사입니다. 그것도 누구보다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한번은 평일 아침 7시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집회에 존 번연이 설교자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1,200여 명이 몰려든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청교도의 황태자라 불리는 존 오웬은 번연처럼 설교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학문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지요. 그만큼 번연은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소설가나 설교자를 꿈꾸었던 것은 아닙니다. 번연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가 직접 쓴 자서전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와 1692년에 출간된 최초의 전기 <존 번연의 삶과 행동에 관한 한 이야기>입니다. 번연은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의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저의 몰락과 부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게 하시고 친히 그 손으로 온전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는 존 번연의 회심 체험기입니다. 그는 회심하기 이전 자신이 얼마나 악한 존재였는지를 처절히 기록합니다. 두려움과 소망, 불안과 믿음, 떨림과 기대 등이 교차하는 자기 심령의 상태를 정직하게 써 내려 갑니다. 그러는 중에 기퍼드 목사의 목양사역과 베드포드 교회 성도들과의 교제에서 큰 도움을 얻습니다. 이제 몇 가지 자료의 도움을 통해 존 번연의 생애와 신학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욕하는 땜장이
번연의 출생일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1628년 11월 30일에 유아세례를 받은 것으로 볼 때, 그 무렵에 출생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그가 태어난 베드포드는 런던에서 약 40마일 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베드포드는 처음부터 종교개혁 신학이 활발했던 지역입니다. 프랑스에서 도망친 위그노의 피난처였습니다. 지역 목사들은 국교회에 반발하여 예복을 입지 않았고, 금식일과 성호를 거부하였습니다. 주로 농사를 짓던 지역이었는데, 존 번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농기구 등을 수리해주던 땜장이였습니다. 번연 역시 그 기술을 물려 받아서 땜장이로 먹고 살았습니다. 존 번연의 집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번연은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는데, 10대 중반에는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을 겪습니다. 아버지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죽자마자 다른 여자와 날름 결혼을 해 버렸습니다. 훗날 존 번연이 고백하기를 자신의 욕하는 습관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도 심한 욕쟁이였습니다. 아무튼 번연은 아버지로부터 땜장이 기술과 욕하는 습관을 물려 받았는데, 얼마나 거칠게 욕을 했는지 이웃집에 살던 여자는 “존처럼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귀를 틀어 막았다고 합니다.
1649년 존 번연은 결혼을 합니다. 메리라고 알려진 경건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경건한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은 경건한 여인이었지만, 마찬가지로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녀가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가지고 온 것은 <평범한 사람의 천국가는 길>, <경건의 실천>이라는 책뿐이었습니다. 결혼 당시 존 번연은 회심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여전히 방탕하고 불경건했으며 신성모독적인 말을 내뱉는 부랑아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순수하고 독실한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악인 씨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존 번연은 악인 씨가 경건한 여성을 어떻게 꼬셔서 결혼하는지 자세히 묘사합니다. 신실한 척 꼬시는 것이지요! 아마 메리를 속인 자신의 경험담을 그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여인 메리는 존 번연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함께 청교도 책을 읽었고,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존 번연도 나름대로 신앙에 흥미를 갖게 되었지만, 이 시기의 그는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겼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그를 보며 사람들은 그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불쌍하고 곤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걱정을 하는 내내 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했으며, 내 자신의 의만 내세우는 일로 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순례자의 영성>이라는 존 번연 전기를 쓴 피터 모든은 당시 그가 “가난하고 거칠고 본능적이고 지독한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합니다.

2. 극적인 회심
“그러던 어느 날,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저는 제가 하던 땜장이 일 때문에 마을의 거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집 문 앞에 앉아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가난한 여인 서너 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참으로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거듭남과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행하심, 자신들의 비참한 본성을 자신이 어떻게 깨닫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사랑으로 자기 영혼을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신앙을 꿋꿋이 지켜냈는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비참함과 불신앙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등입니다. 번연은 여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기 신앙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발견합니다. 그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이 여인들은 기쁨과 확신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나에게는 진정 경건한 사람이라는 참된 표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 경건한 사람이라는 참된 표징을 가진 사람이 갖게 되는 행복하고 복된 상태가 어떤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번연은 성도들과 적극적인 교제를 하며 충고와 권면을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탐독하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는 이 시기의 번연을 신앙으로 격하게 몰아가셨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음 속에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휘몰아쳤는데, 한날은 과거의 죄와 현재의 상태로 인해 버림 받았다는 두려움에 빠졌고, 다른 한날은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에 푹 빠져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의 번연을 구원해준 사람은 베드포드 교회의 기퍼드 목사입니다. 그는 번연을 개인적으로 상담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 설교를 통해 회심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폭풍 같은 시기가 지나고 드디어 번연에게 기쁨과 확신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이 일은 제게 참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진실로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율법과 진노의 말씀은 반드시 생명과 은혜의 말씀에 자리를 내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3. 탁월한 설교자
1655년 존 번연은 기포드 목사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기포드 목사와 베드포드의 교인들은 번연에게 설교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설교를 부탁합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에 제 마음은 당황하고 부끄러웠지만, 그들의 간곡한 바람과 요청에 못 이겨 응하게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모임에서 말씀을 전한 후에 번연은 본격적인 설교 사역을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서 번연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이 무가치한 사람이 이 무거운 중책을 맡을 수 있는지 고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자를 들어 쓰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번연의 설교는 명확하고 생생했습니다. 그는 ‘육신적인 모든 것을 정죄하였고, 율법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저주가 죄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들에게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자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선언했습니다. 특히,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세심한 묘사가 가능했는데, 자기 자신이 그와 같은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경고하고 그로 인한 처참한 상태를 설명하여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를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복된 은혜가 주는 달콤함을 그 누구보다 생기 있게 설교했습니다.
“오, 오늘 내 설교를 들은 자들이 죄와 사망과 지옥과 하나님의 저주를 내가 본 것처럼 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여전히 소원한 관계에 있는 그들이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하심 등도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번연은 인간의 공로 없음과 무가치함을 전제로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생의 교리를 힘 있게 전하였는데, 어느 날은 마치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 등 뒤에서 자신을 격려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성령의 능력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존 번연의 설교 사역은 잉글랜드 전역에 소문이 났고, 그가 설교를 하는 집회에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청중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존 번연은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죄의 엄중함과 복음의 아름다움을 가장 탁월하게 전달했던 설교자였습니다.
4. 옥중의 소설가
1658년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하고 잉글랜드는 왕정으로 돌아갑니다. 모처럼 만들어 놓았던 웨스트민스턴 표준문서들은 사장되었고, 국교회가 교회의 권력을 잡았습니다. 국가 수장을 교회의 머리로 여기는 국교회는 비국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국교회에 동의하지 않는 목사들에게는 집례권과 설교권을 빼앗았습니다. 존 번연은 국교회의 탄압에 동요하지 않았고, 여전히 설교를 강행했습니다. 1660년 11월 12일 체포된 후에 수감됩니다. 죄목은 불법집회 및 비밀모임을 주선하고, 반역을 선동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12년 형을 받은 그는 지력과 체력과 실력이 가장 뛰어난 30대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베드포드 교회의 신자들이 아니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고, 틈틈이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제 평생에서 이 수감생활을 할 때만큼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성경 말씀들이 지금 이 곳과 이 상황에서 제게 밝히 빛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때보다 더 실제적이고 분명하게 다가온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감 중에 그는 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첫 작품은 <묵상의 유익>입니다. 계속해서 <신자의 행위>,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전쟁>, <부활>, <성령으로 말미암는 기도> 등을 집필합니다. 1667-1672년에는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천로역정> 1부를 완성합니다.
5. 가족의 역경 및 죽음
존 번연은 두 번 결혼합니다. 첫째 부인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메리’입니다. 둘 사이에는 총 네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 딸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존 번연은 평생 동안 시각 장애를 앓은 이 딸을 걱정했습니다. 수감 생활 중에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깊은 상심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메리와는 사별을 하게 됩니다. 10년 만이었습니다. 이후 번연은 엘리자베스라는 경건한 여인과 재혼합니다. 존 번연이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엘리자베스가 유산을 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자녀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고, 번연을 위해 상원의원을 만나는 등 돕는 배필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합니다.
번연과 그의 가족들은 항상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가 집필한 소설이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개념이 없던 당시에는 합리적인 수입을 취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번연과 그의 가족들은 항상 우아하고 즐겁게 살아갔습니다. 그는 모든 보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을 소유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행복을 누렸습니다.
노년의 존 번연은 런던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큰 폭우를 만나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임시 숙소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극심한 고열을 앓습니다. 12년 동안의 수감 생활로 인해 몸이 극도로 약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긴 후에 숨을 거둡니다. 1668년 8월 12일, 그의 나이 60세였습니다.
6. 칭의 논쟁
존 번연은 여러 명의 논적들과 격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가 주로 논쟁한 것은 ‘칭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에드워드 버러우와 논쟁을 했는데, 그는 퀘이커 교도입니다. 이 논쟁은 수감되기 직전인 29세 쯤에 일어났습니다. 존 번연의 칭의론은 간단합니다. “죄인의 칭의는 사람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에드워드 버러우는 칭의의 근거를 역사적 예수가 아닌 인간의 내적인 빛에 두었습니다. 번연은 <복음 진리의 개진>이라는 책자를 통해서 반박합니다. 번연이 볼 때 역사적 예수를 배제한 채 자기 안에 있는 신비적인 무엇인가를 근거한 의는 결국 인간의 의를 의지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자기 안에 소유된 무엇인가, 곧 인간적인 요소를 공로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연은 이 주장의 불법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오직 역사 속에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의로움이 된다고 반박합니다.
두 번째 논쟁 대상은 에드워드 파울러입니다. 그때 번연의 나이는 수감생활을 마칠 때 즈음이었으니 44세 정도입니다. 파울러는 예수님을 교사요 모범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하고 도덕적인 삶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신학이 말하는 예정교리와 전가교리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것을 주장하는 자들을 반율법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전적 타락 교리도 부정하고, 인간 본성의 선함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의로움은 오직 순종에 의해 획득된다고 본 것입니다. 번연은 무지한 자라고 비판하며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칭의’를 다시 한 번 굳건히 변호합니다.
번연은 칭의의 근거가 인간 편에 단 한 톨도 없다고 봅니다. 번연에게 있어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선한 본성과 능력이 전혀 없으며, 의의 근거를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철저하게 인간 밖에 있는 의, 하늘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의만이 죄인의 칭의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번연의 칭의론은 종교개혁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합니다.
7. 천로역정과 존 번연의 일생
천로역정에 나오는 크리스천은 존 번연 자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번연은 자신이 경험했던 사건과 인물들을 천로역정에 적절히 등장시킵니다.
1) 멸망의 도성에서 죄를 깨닫고 두려움에 떨던 크리스천의 모습은 죄인 됨을 깨달은 번연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2) 아름다운 궁전에서 경건한 대화를 나누는 네 처녀는 자기 안에 거듭남의 표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여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3) 절망 거인에게 잡혀 의심의 성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던 모습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번연의 모습과 겹칩니다. 4) 유혹과 시험에 무릎을 꿇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크리스천은 존 번연 자신입니다. 5) 칭의 논쟁을 벌였던 파울러 등은 순례의 길에서 만난 무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처럼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사건 등은 모두 존 번연의 인생이 반영된 것입니다. 우화에 불과한 천로역정이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는 이유입니다. 천로역정을 읽는 독자들은 책에서 만나는 인물과 사건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크리스천과 함께 한탄을 하고,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쉬고, 함께 기뻐합니다. 처음에는 크리스천이라는 인물을 통해 소설을 읽어나가지만, 나중에는 자기 자신이 순례의 길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존 번연이 경험했고, 크리스천이 겪었던 그 길이 지금 나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로역정은 영감이 강하게 살아 있는 책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눈물과 한숨과 웃음과 절망과 환희를 동시에 맛보게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존 번연이 <천로역정>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이 책은 여러분을 불러내서 나그네로 만든다. 여기에 실린 조언을 따르면, 곧바로 거룩한 땅을 향하게 될 것이다. 게으른 이는 부지런해지고, 눈 먼 이들도 즐거운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 진귀하고 유익한 걸 원하는가? 우화 속에서 진리를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기발한 이야기를 읽어보라.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잠들지 않은 채 꿈을 꾸고 싶은가? 환하게 웃으면서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싶은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한 장 한 장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할지라도 자신을 살피며 과연 축복 받은 백성인지 알아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서 오라. 이 책의 세계로.”
존 번연.